인디애나 페이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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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인디애나 페이서스는 1967년 창단된 미국의 프로 농구팀으로, 현재 NBA 동부 컨퍼런스에 소속되어 있다. ABA 리그에서 3번의 챔피언십을 차지한 후 NBA에 합류했으며, 레지 밀러 시대를 거치며 동부 컨퍼런스의 강호로 자리매김했다. 폴 조지, 빅터 올라디포 등 스타 선수들을 배출했으며, 2023-24 시즌에는 동부 컨퍼런스 파이널에 진출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디트로이트 피스턴스, 뉴욕 닉스, 마이애미 히트 등과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며, 게인브리지 필드하우스를 홈 경기장으로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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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애나 페이서스 - [스포츠팀]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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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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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단 | 1967년 |
역사 | 인디애나 페이서스 (1967–1976, ABA) 인디애나 페이서스 (1976–현재, NBA) |
연고지 | 인디애나주 인디애나폴리스 |
경기장 | 게인브리지 필드하우스 |
소속 리그 | NBA |
콘퍼런스 | 동부 |
디비전 | 센트럴 |
팀 컬러 | 페이서스 파랑 금색 시원한 회색 |
스폰서 | 스포크노트 |
구단주 | 허브 사이먼 |
사장 | 케빈 프리처드 |
단장 | 채드 뷰캐넌 |
감독 | 릭 칼라일 |
NBA D 리그 제휴팀 | 인디애나 매드 앤츠 |
웹사이트 | 인디애나 페이서스 공식 웹사이트 |
우승 기록 | |
리그 우승 | 3회 (ABA: 3회 (1970, 1972, 1973), NBA: 0회) |
콘퍼런스 우승 | 1회 (2000) |
디비전 우승 | 9회 (ABA: 3회 (1969, 1970, 1971), NBA: 6회 (1995, 1999, 2000, 2004, 2013, 2014)) |
영구 결번 |
2. 역사
미국에서도 농구 인기가 높은 인디애나 주에는, 과거 인디애나폴리스 제츠(원래 코트 스카이즈)와 그 뒤를 이은 인디애나폴리스 올림피언스라는 프로팀이 있었다. NBA 창설기에 활동한 이 두 팀은 1950년대 초반에 사라졌다. 그 후 오랫동안 인디애나 주에는 프로 농구팀이 없었다.
2. 1. ABA 시대 (1967-1976)
1967년, 인디애나주에 프로 농구팀을 유치하기 위한 지역 재계 인사들의 노력으로 인디애나 페이서스가 창단되었다. 리처드 팅컴을 포함한 6명의 투자자들이 팀 창단 자금을 모았다.[12] 초창기 페이서스는 인디애나 주립 박람회장 콜리세움을 홈구장으로 사용했다.
초창기 페이서스는 ABA를 대표하는 강팀 중 하나였다. 밥 "슬릭" 레너드 감독의 지휘 아래, 멜 다니엘스, 조지 맥기니스 등 스타 선수들의 활약으로 1970년, 1972년, 1973년 세 차례 ABA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12] 총 9년의 ABA 역사에서 5번의 ABA 결승에 진출하는 기록을 세웠다.
1974년, 페이서스는 인디애나폴리스 다운타운에 새로 지어진 마켓 스퀘어 아레나로 홈구장을 이전했다.
1976년, ABA가 해체되면서 페이서스는 덴버 너기츠, 뉴욕 네츠, 샌안토니오 스퍼스와 함께 NBA에 합류했다.[12]
시즌 | 승 | 패 | 승률 | 플레이오프 결과 | 비고 |
---|---|---|---|---|---|
1967-68 | 38 | 40 | .487 | 지구 준결승 탈락 | 피츠버그 3, 페이서스 0 |
1968-69 | 44 | 34 | .564 | 지구 준결승 승리 지구 결승 승리 ABA 파이널 탈락 | 페이서스 4, 켄터키 3 페이서스 4, 마이애미 1 오클랜드 4, 페이서스 1 |
1969-70 | 59 | 25 | .702 | 지구 준결승 승리 지구 결승 승리 ABA 파이널 우승 | 페이서스 4, 캐롤라이나 0 페이서스 4, 켄터키 1 페이서스 4, 로스앤젤레스 2 |
1970-71 | 58 | 26 | .690 | 지구 준결승 승리 지구 결승 탈락 | 페이서스 4, 멤피스 0 유타 4, 페이서스 3 |
1971-72 | 47 | 37 | .560 | 지구 준결승 승리 지구 결승 승리 ABA 파이널 우승 | 페이서스 4, 너기츠 3 페이서스 4, 유타 3 페이서스 4, 뉴욕 2 |
1972-73 | 51 | 33 | .607 | 지구 준결승 승리 지구 결승 승리 ABA 파이널 우승 | 페이서스 4, 너기츠 1 페이서스 4, 유타 2 페이서스 4, 켄터키 3 |
1973-74 | 46 | 38 | .548 | 지구 준결승 승리 지구 결승 탈락 | 페이서스 4, 스퍼스 3 유타 4, 페이서스 3 |
1974-75 | 45 | 39 | .536 | 지구 준결승 승리 지구 결승 승리 ABA 파이널 탈락 | 페이서스 4, 스퍼스 2 페이서스 4, 너기츠 3 켄터키 4, 페이서스 1 |
1975-76 | 39 | 45 | .464 | 지구 준결승 탈락 | 켄터키 2, 페이서스 1 |
2. 2. NBA 초기 (1976-1987)
American Basketball Association|아메리칸 바스켓볼 어소시에이션영어 (ABA)와의 합병으로 NBA에 합류한 후, 페이서스는 높은 가입금과 TV 중계권 제한 등으로 인해 재정난에 시달렸다. 빌리 나이트, 돈 부스 등이 분전했으나, 팀은 하위권을 맴돌았다. 1980년대 초, 잭 매키니 감독 부임 후에도 성적 부진은 계속되었다.시즌 | 승 | 패 | 승률 | 플레이오프 결과 |
---|---|---|---|---|
1976-77 | 36 | 46 | .439 | 진출 실패 |
1977-78 | 31 | 51 | .378 | 진출 실패 |
1978-79 | 38 | 44 | .463 | 진출 실패 |
1979-80 | 37 | 45 | .451 | 진출 실패 |
1980-81 | 44 | 38 | .537 | 1회전 탈락 |
1981-82 | 35 | 47 | .427 | 진출 실패 |
1982-83 | 20 | 62 | .244 | 진출 실패 |
1983-84 | 26 | 56 | .317 | 진출 실패 |
1984-85 | 22 | 60 | .268 | 진출 실패 |
1985-86 | 26 | 56 | .317 | 진출 실패 |
1986-87 | 41 | 41 | .500 | 1회전 탈락 |
2. 3. 레지 밀러 시대 (1987-2005)
페이서스는 1980년대 후반에 팀의 미래를 이끌 핵심 선수들을 영입했다. 1986년 드래프트 4순위로 지명된 척 퍼슨은 그 시즌 신인왕을 수상했고, 트레이드되기 전까지 3년간 팀을 이끌었다. 이듬해인 1987년 11순위로 레지 밀러를 지명했는데, 그는 이후 페이서스 역사상 가장 유명한 선수가 되었다.[76] 1988년에는 네덜란드 출신 센터 릭 스미츠를 영입했다.1990년대 초반까지 팀은 승률 5할 정도를 기록했지만, 동부 지구의 강팀으로 성장한 것은 1993년 래리 브라운을 감독으로 영입하면서부터였다. 페이서스는 50승 정도를 기록했지만, 플레이오프에서 더욱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동부 지구의 라이벌이었던 뉴욕 닉스와의 대결과, 레지 밀러가 보여준 수많은 역전극은 많은 주목을 받았다.[76] 그러나 팀은 NBA 파이널에 진출하지 못했고, 1996-97 시즌에는 주전 선수들의 부상으로 성적이 부진하여 시즌이 끝나자 래리 브라운은 사임했다.
래리 브라운의 뒤를 이은 것은 선수 시절 명성을 떨쳤던 래리 버드였다. 래리 버드가 감독으로 취임한 첫 시즌, 페이서스는 팀 역사상 최다인 58승을 거두었다. 이 시즌 플레이오프에서는 시카고 불스를 압박했지만 아쉽게 패배했다. 다음 시즌에도 지구 결승에서 뉴욕 닉스에게 패했다. 이어진 1999-2000 시즌에는 마침내 NBA 파이널에 진출했지만,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에 2승 4패로 패배했다. 래리 버드는 이 시즌을 마지막으로 사임했다.
다음으로 페이서스의 감독으로 취임한 것은 아이제이아 토마스였다. 릭 스미츠의 은퇴와, 저메인 오닐 영입을 위해 데일 데이비스를 방출하는 등 이후 3시즌은 재건 시기에 들어갔다. 승률은 5할 정도였고, 플레이오프에서는 1회전에서 계속 패배했으며, 아이제이아 토마스 3년차에 제너럴 매니저로 취임한 래리 버드는 현역 시절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던 아이제이아 토마스를 해임했다. 대신 릭 칼라일을 감독으로 임명했다.
2. 4. 저메인 오닐 시대 (2000-2007)
2003-04 시즌, 저메인 오닐, 론 아테스트, 알 해링턴, 자말 틴슬리 등 젊은 선수들과 베테랑 레지 밀러를 중심으로 페이서스는 리그 최고 승률인 61승 21패를 기록했다. 오닐과 아테스트는 올스타에 출전했고, 아테스트는 최우수 수비 선수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플레이오프에서는 그 해 우승팀인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에게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패했다.[1]2004-05 시즌에는 오프 시즌에 스티븐 잭슨을 영입했으나, 시즌 초반 경기 중 폭행 사건으로 많은 주력 선수들이 대폭 출장 정지를 당했다. 이후 밀러를 중심으로 시즌을 치러 이스턴 컨퍼런스 6번 시드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나, 컨퍼런스 준결승에서 피스톤스에게 패했고, 밀러는 은퇴했다.[1]
2006-07 시즌에는 시즌 중반 잭슨, 해링턴 등을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로 트레이드하고, 마이크 던리비 주니어, 트로이 머피 등을 영입하는 대대적인 팀 개편을 단행했다. 하지만 팀은 기대만큼 성적이 오르지 못했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했다. 이 시즌을 마지막으로 3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을 달성했던 릭 칼라일 감독은 해임되었다.[1]
2. 5. 대니 그레인저 시대 (2005-2012)
Danny Granger영어를 중심으로 팀을 재편한 시기였다. 2006-07 시즌 중반에는 마이크 던리비 주니어, 트로이 머피 등을 영입하며 팀 개편을 단행했지만, 플레이오프 진출에는 실패했다.[21] 릭 칼라일 감독이 해임되고 짐 오브라이언이 새 감독으로 부임했다.2007-08 시즌에는 대니 그레인저가 에이스로 부상했지만, 자말 틴슬리 등의 부상으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2008-09 시즌에는 로이 히버트를 영입하고 그레인저 중심으로 팀을 재편했지만, 3시즌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2009-10 시즌에는 타일러 한스브로를 영입했지만, 팀의 재정난으로 큰 보강을 하지 못해 10년 만에 최저 성적을 기록했다.
2010-11 시즌에는 폴 조지, 랜스 스티븐슨을 영입하고, 대런 콜리슨을 영입하며 전력을 보강했다. 시즌 중 프랭크 보겔이 임시 감독으로 부임하여 8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1라운드에서 데릭 로즈의 시카고 불스에 패했다.
2. 6. 폴 조지 시대 (2012-2017)
2011-12 시즌, 샌안토니오 스퍼스에 카와이 레너드의 교섭권을 양도하고 조지 힐을 영입했다. FA 데이비드 웨스트와 계약하여 프런트 코트를 보강했고, 프랭크 보겔이 정식 헤드 코치로 취임하며 팀 전체의 기여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팀을 재편했다. 그 결과, 동부 컨퍼런스 3위(42승 24패)로 플레이오프에 진출, 7시즌 만에 1라운드를 통과했으나, 컨퍼런스 준결승에서 르브론 제임스의 마이애미 히트에 패했다.
폴 조지의 급성장으로 페이서스는 동부 컨퍼런스의 강호로 부상했다. 2012-13 시즌 49승 32패를 기록,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애틀랜타 호크스(4승 2패), 컨퍼런스 준결승에서 뉴욕 닉스(4승 2패)를 꺾었으나, 컨퍼런스 결승에서 마이애미 히트에 3승 4패로 패했다.
2013-14 시즌에는 56승 26패로 동부 컨퍼런스 1위를 차지,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애틀랜타 호크스(4승 3패), 컨퍼런스 준결승에서 워싱턴 위저즈(4승 2패)를 꺾었으나, 컨퍼런스 결승에서 다시 마이애미 히트에 2승 4패로 패하며 NBA 파이널 진출이 좌절되었다.
2014-15 시즌에는 폴 조지가 미국 국가대표팀 연습 경기 중 다리 부상을 당해 팀은 위기를 맞았고, 결국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38승 44패).
2015-16 시즌, 폴 조지가 부상에서 복귀하여 팀을 플레이오프로 이끌었으나, 1라운드에서 토론토 랩터스에 3승 4패로 패했다.
2016-17 시즌에는 42승 40패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나, 1라운드에서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에 4전 전패를 당했다. 2016년, 프랭크 보겔 감독이 해임되고 네이트 맥밀란이 새 감독으로 부임했다.
2. 7. 빅터 올라디포와 도만타스 사보니스 시대 (2017-2021)
2017년, 페이서스는 폴 조지를 오클라호마시티 선더로 트레이드하고 빅터 올라디포와 도만타스 사보니스를 영입했다. 올라디포는 2017-18 시즌에 NBA 기량발전상을 수상하고 올스타에 선정되며 팀의 새로운 에이스로 떠올랐다.2018-19 시즌, 올라디포의 부상에도 불구하고 페이서스는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나, 1라운드에서 보스턴 셀틱스에 4전 전패로 스윕패했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시즌이 중단되었다가 재개되었으나,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마이애미 히트에 다시 한번 스윕패했다.
이후 네이트 맥밀란 감독이 해임되고 네이트 비요크그렌이 새로운 감독으로 부임했으나, 2021년 한 시즌 만에 경질되었다.
2. 8. 릭 칼라일 감독 복귀 (2021-현재)
Rick Carlisle영어 감독은 2021년에 인디애나 페이서스의 감독으로 복귀했다. 2021-22 시즌에는 도만타스 사보니스, 카리스 르버트 등 핵심 선수들을 트레이드하고, 타이리스 할리버튼, 버디 힐드 등을 영입하며 리빌딩을 시작했다. 2022년 NBA 드래프트에서는 베네딕트 매서린을 지명하며 미래를 위한 투자를 이어갔다.2023-24 시즌, 페이서스는 타이리스 할리버튼을 중심으로 팀을 재편하여 동부 컨퍼런스 파이널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뤘으나, 보스턴 셀틱스에게 패배하며 아쉽게 시즌을 마무리했다.
시즌 | 승 | 패 | 승률 | 플레이오프 결과 |
---|---|---|---|---|
2021-22 | 25 | 57 | 진출 실패 | |
2022-23 | 35 | 47 | 진출 실패 | |
2023-24 | 47 | 35 | .573 | 셀틱스 4, 페이서스 0 |
디트로이트 피스턴스, 뉴욕 닉스, 마이애미 히트와 라이벌 관계가 있다.
3. 라이벌 관계
3. 1. 디트로이트 피스턴스
페이서스와 피스턴스는 1990년 플레이오프에서 처음 만났는데, 피스턴스는 페이서스를 3경기 만에 스윕하며 두 번째 NBA 챔피언십으로 향했다.[148] 그러나 진정한 라이벌 관계는 2003-04 시즌에 시작되었다. 당시 페이서스는 리그 최고인 61승을 기록했고, 저메인 오닐, 론 아테스트, 레지 밀러가 팀을 이끌었으며, 릭 칼라일이 감독을 맡았다. 칼라일은 이전 시즌 말에 디트로이트에서 해고된 상태였다. 한편, 디트로이트는 챈시 빌럽스, 벤 월러스, 라시드 월러스, 테이션 프린스, 리처드 해밀턴이 이끌었으며, 전 페이서스 감독이었던 래리 브라운이 감독을 맡았다. 정규 시즌 첫 세 번의 맞대결에서는 인디애나가 승리했지만, 마지막 정규 시즌 경기에서는 팰리스에서 피스턴스에게 패했다.
2004년 동부 컨퍼런스 결승전에서 두 팀은 다시 만났다. 인디애나는 밀러의 막판 활약에 힘입어 1차전에서 간신히 승리했다. 2차전 후반, 디트로이트가 2점 차로 앞선 상황에서 빌럽스가 공을 넘겨받았고, 밀러는 동점을 만들 수 있는 무방비 상태의 레이업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밀러가 득점하기 직전, 프린스가 뒤에서 달려와 슛을 블록했다. 6차전 막바지에 디트로이트가 근소한 리드를 잡고 있을 때, 아테스트가 해밀턴에게 플래그런트 파울을 범하면서 양 팀 간의 감정이 폭발할 뻔했다. 결국 디트로이트가 4-2로 시리즈에서 승리하며 NBA 우승을 차지했다.
2004년 11월 19일, 오번힐스 팰리스에서는 어보텀 앳 더 팰리스로 알려진 사건이 발생했다. 관중석에서 발생한 폭력적인 싸움으로 인해 9명의 선수들이 다양한 기간 동안 출장 정지 처분을 받았다.[148] 이 중 아테스트는 가장 긴 징계를 받았다.
그 해, 양 팀은 정규 시즌 네 번의 맞대결에서 승리를 나눠 가졌다. 이후 동부 컨퍼런스 준결승에서 다시 만났고, 첫 두 경기를 서로 나눠 가졌다. 페이서스는 18점 차 리드를 날려버렸지만,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열린 3차전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피스턴스는 4, 5차전에서 승리했다. 페이서스는 패배하면 밀러가 은퇴한다는 사실을 알고 맹렬히 싸웠지만, 결국 피스턴스에게 88-79로 패했다.
3. 2. 뉴욕 닉스
닉스–페이서스 라이벌리는 1977년부터 널리 알려졌으며, 1990년대에 두드러졌다. 1990년대 동안 닉스와 페이서스는 매년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강팀이었다. 1993년부터 2000년까지 6번이나 플레이오프에서 만나면서 라이벌 관계가 심화되었는데, 특히 레지 밀러와 닉스의 열렬한 팬인 스파이크 리 사이의 신경전은 이 라이벌 관계를 상징하는 사건이었다.[149] 밀러는 이 라이벌 관계를 햇필드-맥코이 가문의 싸움에 비유했고,[149] 1998년 ''뉴욕 타임스''는 이를 "리그에서 가장 격렬한 싸움"이라고 묘사했다.[150]
당시 페이서스는 레지 밀러, 릭 스미츠, 마크 잭슨, 제일런 로즈, 크리스 멀린, 데일 데이비스, 안토니오 데이비스, 데릭 맥키, 데틀레프 슈렘프 등을 중심으로 팀을 구성했다. 반면, 닉스는 패트릭 유잉, 존 스타크스, 찰스 오클리, 앨런 휴스턴, 래리 존슨, 라트렐 스프레웰, 그리고 전 페이서스 레전드인 허브 윌리엄스를 중심으로 팀을 꾸렸다.
이후 닉스와 페이서스는 2013년 동부 컨퍼런스 준결승에서 다시 만났고, 페이서스가 닉스를 4–2로 꺾었다. 당시 페이서스에는 올스타 선수인 폴 조지, 데이비드 웨스트, 로이 히버트, 조지 힐, 랜스 스티븐슨, 타일러 핸스브로, 제럴드 그린, 이안 마힌미, D. J. 어거스틴이 있었다. 닉스는 올스타 선수인 카멜로 앤서니, J. R. 스미스, 레이먼드 펠튼, 타이슨 챈들러, 제이슨 키드, 이만 셤퍼트, 래시드 월러스, 케니언 마틴, 마커스 켐비로 구성되었다. 페이서스는 시즌을 마감하는 부상을 입은 올스타 포워드 대니 그레인저 없이 경기를 치렀고, 닉스의 올스타 빅맨인 아마레 스타더마이어 또한 부상으로 인해 제한적인 출전 시간을 가졌다. 시즌이 끝난 후, 크리스 코플랜드는 닉스를 떠나 페이서스와 계약했다.
2024년 동부 컨퍼런스 준결승에서 닉스와 페이서스는 다시 만났다. 페이서스는 올스타 포인트 가드 타이리스 할리버튼을 중심으로 마일스 터너, 파스칼 시아캄, 에런 네스미스, 앤드루 넴브하드가 선발 라인업을 구성했다. 반면 "노바 닉스"는 자체 올스타 포인트 가드인 제일런 브런슨을 중심으로, 줄리어스 랜들, OG 아누노비, 미첼 로빈슨, 돈테 디빈센조, 조쉬 하트가 주요 선수로 활약했다. 랜들이 부상으로 시리즈에 결장했음에도 불구하고, 닉스는 홈에서 열린 1차전을 마지막 1분 동안의 논란이 많은 심판 판정 끝에 승리하며 시리즈를 먼저 가져갔고, 아누노비가 부상을 당한 2차전에서도 승리했다. 페이서스는 이에 응하여 홈에서 3차전과 4차전을 승리했고, 이후 양 팀은 5차전과 6차전을 홈에서 승리했다. 페이서스는 7차전에서 역사적인 공격력을 선보이며 시리즈를 4–3으로 승리했다.[140]
3. 3. 마이애미 히트
두 프랜차이즈는 2004년 NBA 플레이오프에서 처음 만났는데, 인디애나가 동부 컨퍼런스 준결승에서 4-2로 승리했다.[151] 인디애나는 동부 컨퍼런스에서 1번 시드를 얻었고, 리그 최고 기록을 보유했으며 레지 밀러, 저메인 오닐, 론 아테스트를 필두로 타이틀 경쟁자로 여겨졌다. 히트는 신인 드웨인 웨이드를 중심으로 했으며, 웨이드가 처음으로 플레이오프를 경험하는 해였다. 페이서스는 결국 2004년 NBA 챔피언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에게 동부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6경기 만에 패했다.
마이애미 히트와의 진정한 라이벌 관계는 2012년 NBA 플레이오프의 동부 컨퍼런스 준결승에서 시작되었다.[151] 2012년, 마이애미의 크리스 보쉬가 복부 염좌로 결장하면서 인디애나가 2-1로 앞서 나갔다. 르브론 제임스와 드웨인 웨이드의 활약에 힘입어 마이애미는 4-2로 시리즈에서 3연승을 거두고, 이후 2012년 NBA 챔피언이 되었다.
다음 시즌 히트와 페이서스는 2013년 NBA 플레이오프의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만났다.[151] 히트는 제임스의 게임 위닝 레이업으로 1차전에서 승리했고, 페이서스는 2차전에서 제임스가 4쿼터 후반에 2번의 턴오버를 범하도록 하여 1-1로 시리즈를 되돌렸다. 히트는 7차전에서 99-76으로 승리하며 4-3으로 시리즈에서 승리했고, 결국 2013년 NBA 챔피언이 되었다.
2014년 NBA 플레이오프에서 페이서스와 히트는 두 번째 연속적인 동부 컨퍼런스 파이널 대결에서 라이벌 관계를 재개했다.[151] 인디애나는 2013-14 시즌에 56-26의 기록으로 동부 컨퍼런스에서 1번 시드를 얻어 홈 코트 어드밴티지를 가지고 시리즈에 진입했다. 마이애미는 이번에는 6경기 만에 인디애나를 다시 탈락시켰다.
인디애나와 마이애미는 2014년 이후 처음으로 2020년 NBA 플레이오프에서 다시 만났고, 히트가 1라운드에서 페이서스를 스윕했다.
4. 홈 경기장
경기장 | 사용기간 | 수용인원 | 장소 | 비고 |
---|---|---|---|---|
인디애나 스테이트 페어 콜리시엄 | 1967년~1974년 | 10,000명 | 인디애나주 인디애나폴리스 | 1967년부터 1974년까지 페이서스의 홈구장이었으며, 페이서스는 이 곳에서 3번의 ABA 챔피언십을 차지했다.[141] |
마켓 스퀘어 아레나 | 1974년~1999년 | 16,530명 | 1974년에 홈구장을 마켓 스퀘어 아레나로 옮겼다.[141] | |
게인브리지 필드하우스 | 1999년~현재 | 17,274명 | 콘세코 필드하우스 (1999년~2011년) 뱅커스 라이프 필드하우스 (2011년~2021년) ![]() |
5. 팀 색상 및 유니폼
인디애나 페이서스의 팀 색상은 네이비 블루, 옐로우 (골드), 쿨 그레이, 화이트이다.[6] 원래 팀 색상인 파란색과 노란색은 인디애나 주 기에서 유래했다. 페이서스는 파란색과 노란색 트림이 있는 일반적인 흰색 홈 유니폼과 노란색 트림이 있는 파란색 원정 유니폼을 착용한다. 파란색 트림이 있는 노란색 유니폼도 있으며, 가끔 홈이나 원정에서 착용한다. 1983 시즌에는 홈에서 파란색과 흰색 트림이 있는 금색 홈 유니폼을 착용하기도 했다.
1990년부터 1997년까지 착용했던 유니폼은 레지 밀러를 슈퍼스타로 만든 가장 상징적인 유니폼 중 하나로, 미국의 육상 선수 플로렌스 그리피스-조이너가 디자인했으며, 헬베티카와 유사한 현대적인 서체를 사용했다. 이 유니폼은 페이서스 팬들에게 "Flo-Jos"라고 불렸다. 1997년부터 2005년까지는 핀스트라이프 유니폼을 착용했다.
2005년 9월 29일에는 새로운 유니폼이 공개되었고,[145] 2015년 7월 21일에는 메트로 골드윈 메이어 (MGM) 스튜디오와 협력하여 1986년 영화 ''후지어스''를 기반으로 한 "히커리" 유니폼을 공개했다. 페이서스는 2015–16 시즌 동안 이 마룬색과 금색 "히커리" (영화에 나오는 가상의 고등학교 이름과 색상) 유니폼을 여러 홈 경기와 몇몇 원정 경기에서 착용했다. 이는 북미 주요 프로 스포츠 팀이 영화를 기반으로 한 유니폼을 착용한 첫 번째 사례이다.[146][147]
2017년 7월 28일, 인디애나 페이서스는 나이키(Nike, Inc.)와의 NBA 유니폼 계약에 맞춰 새로운 유니폼과 로고를 공개했다.[4]
6. 영구 결번
1980–1982